브라질 축구의 개요와 역사
오늘 글에서는 브라질의 축구가 왜 이렇게 유명해졌는지, 그 간단한 역사와 유명한 팀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실제로 브라질에는 커피 다음으로 많이 수출되는 것이 바로 축구라고 할 정도로 전 세계 프로리그에 많은 브라질 축구선수들이 진출해있으며, 반대로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오는 유소년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브라질 축구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대략적인 역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브라질의 축구 개요
브라질의 축구는 남자, 여자 대표팀 모두 강팀이며 비록 다른 남미권이나 유럽권의 강호들이 많지만 언제나 우승후보로 거론될 만큼 유명합니다. FIFA 월드컵 최다 우승국이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국가이기도 한데, 한국에서는 이를 삼바축구, 브라질 축구라고 부르며 브라질 축구 특유의 스타일을 이름 지어 부르기도 합니다.
자국 축구 리그는 유럽 쪽에 비해 인기나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프로 축구선수를 양성하기 위한 유소년 프로그램이나 인프라가 잘 되어있어 각국에서 축구 선수를 꿈꾸는 많은 유소년들이 브라질로 유학을 오기도 합니다. 반대로, 전 세계에서 축구 프로리그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 브라질 선수가 하나도 없는 리그는 거의 없을 정도로 브라질 선수들 또한 해외로 많이 진출해있으며 K리그에서도 수많은 브라질 출신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역사
브라질은 유럽 대륙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축구를 제대로 도입한 국가 중 하나였지만 처음부터 축구 강팀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첫 월드컵인 1930년 대회에서 브라질은 약한 팀이었고 유고슬라비아에 패하는 등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으며, 오히려 옆 나라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강한 팀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으로 약 12년의 공백이 생긴 이후 다시 시작된 축구리그에서 브라질은 경기력을 많이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다른 남미 국가에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때 브라질 축구에 큰 변화가 시작됩니다. 유명한 축구선수 펠레가 현역으로 뛰던 1958년, 월드컵에서 최초로 우승을 하면서 강팀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펠레와 함께 브라질의 핵심전력이었던 가린샤가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1960년대 또한 펠레를 필두로 브라질은 강력한 축구 실력을 보여주었고 1970년 월드컵이 끝나자 축구하면 브라질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황금기를 보냈던 브라질 축구팀은 펠레와 토스탕이 은퇴하면서 점차 끝을 보이게 됩니다. 1974년 월드컵에서는 이전과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 황금세대들을 이어갈 주력 선수가 없어 형편없는 공격력을 보였습니다. 이때 감독이었던 마리오 자갈루는, 브라질의 축구 열혈팬들의 협박을 이겨내야 할 만큼 브라질 국민들의 분노는 거셌습니다.
아쉽게도 1980년대와 1990년대 또한 브라질 축구대표팀은 성공적인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화려했던 지난날들은 점차 잊혀갔습니다. 이때 브라질 축구를 다시 부흥시킬 선수가 나오는데, 바로 호나우두입니다. 제2의 펠레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전성기를 보여준 그는 지속적인 명승부를 펼치며 199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준결승까지 끌고 올라갑니다. 또 2002년 월드컵에서 엄청난 기량을 보여주며 다른 선수들과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전 경기 우승을 거쳐 월드컵에서 최종 우승을 하는 엄청난 성과를 내보였습니다.
이후 호나우지뉴, 카카, 네이마르 등 굵직한 월드 스타들을 배출해낸 브라질 축구는 침체와 역전을 반복하며 아직도 저력 있는 우승후보로 항상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20세기 후반 브라질 축구가 가지고 있던 기록들과 전술들이 21세기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으며 2018 월드컵에서 8강에서 패배한 상황, 또 남미 전 국가들이 4강에 진출하지 못한 상황 등을 보았을 때 남미가 전반적으로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대한민국과의 경기
대한민국과의 전적은 총 6승 1패로 브라질이 앞서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서울에서 열린 A리그 매치에서도 역시 브라질이 승리하였는데, 대다수의 축구 관중들은 패배에 슬퍼하기보다 브라질의 삼바 축구를 직관하여 좋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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