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룰라의 업적 및 몰락
오늘은 전 글에 이어, 많은 노동자층의 지지를 업고 대통령이 된 룰라의 과업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디에서든 지난 대통령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보통 평가나 찬반이 많이 갈리기 마련이지만 적어도 룰라는 빈곤층을 위해 노력한 대통령으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부정부패 및 뇌물수수 혐의를 받지 않았다면 그의 위치가 얼마나 절대적인 자리에 있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대통령 룰라의 업적
89년부터 세 차례 대권 도전에 실패했던 룰라는 2002년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가 폭넓은 노동자층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연달아 낙마한 것은 그 당시 노동자당이 가지고 있던 급진적인 정책들 때문이었는데 2002년에는 이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급진좌파적 정책들을 다듬은 덕에 상대적으로 대중의 거부감이 덜했습니다. 이를 통해 다수의 중도파들을 포섭하면서 취임에 성공한 그는 대대적인 빈곤층 대상 복지 정책을 시작합니다.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당시 빈곤층에게 생활보조금을 가족단위로 지원했던 “볼사 파밀리아”입니다. 특히 정부는 이 지원금을 지급할 때 수령인들에게 조건을 내걸었는데, “아이를 학교에 보낼 것, 결석률 15% 이상이면 지원 불가”라는 조항은 그가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당시의 브라질은 빈부격차가 심각해 빈곤층의 사람들이 경제적 도약을 하는 것이 거의 물가 능한 구조였기 때문에 이런 교육과 경제적 지원을 통해 사회적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 볼사 파밀리아 정책은 직접적으로 빈곤층들의 손에 지원금이 쥐어졌기 때문에 빈곤층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었지만 반대로 포퓰리즘, 낭비성 지원금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볼사 파밀리아 정책은 결과적으로 브라질 국민들에게 큰 효과를 보였는데 그가 제시한 교육 조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학교 출석률은 크게 상승했고 어린이 노동착취는 감소했으며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줄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보우사 파밀리아는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데 일조한 좋은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많은 빈곤층 국민들을 룰라의 절대적인 지지층으로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물론 룰라 시기에 시행된 정책은 볼사 파밀리아 외에도 매우 많았으며, 브라질의 굶주림을 끝내겠다는 목적으로 복지정책을 진행하고, 인프라 건설, 토지개혁, 최저임금 상승 등을 위한 정책도 실행했습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실업률은 10% 아래로 내려갔으며 경제규모가 크게 성장하면서 세계 10위권 안으로 안착하는 등 엄청난 성장을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당시 한창 브릭스(BRICS)라고 하여, 21세기 초 면적과 인구가 큰 선진 이머징 마켓 국가 5개의 하나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빈곤층들의 성장은 결국 내수시장 동력이 되었고 브라질의 경제는 전례없는 호황을 맞습니다. 브라질의 법상 대통령은 3번까지 연임이 가능한데 그는 당시 지지율이 80%에 달할 만큼 인기가 좋았음에도 두 번만 임기를 다하고 세 번째는 본인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셰프에게 그 자리를 넘겨줍니다. 그의 든든한 지지를 뒤에 업은 지우마 호셰프는 당시 정치적 입지가 없었던 사람이었음에도 대통령에 당선되며 최초의 브라질 여성 대통령 타이틀을 달게 됩니다.
룰라의 몰락
지우마 호셰프를 당선시키고 일선에서 물러나있던 룰라는 2016년 라바자투 작전에 휘말리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옵니다. 노동자의 친구이자 빈곤층의 아버지와 같았던 그가 부정부패 및 돈세탁 혐의로 기소당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향력을 행사해 세제 혜택에 개입하고, 구매계약 과정에 개입했으며 그 댓가로 건물 등을 받는 등 뇌물수수 혐의가 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룰라는 이런 혐의들을 줄곧 부인했지만 결국 징역 9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아 2018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고 수감되게 되는데, 2021년 3월이 되어서야 브라질 연방대법원에서 당시 실형선고가 편파적이었다고 밝히며 풀려나게 됩니다. 이로서 그는 202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극우파 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경쟁하게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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